2023년 기준 대한민국의 외국인 주민 수는 총 인구의 4.8%에 해당하는 246만 명으로 집계되어 역대 조사 이래 최대치를 기록했다. 한편, 2022년 기준 해외(OECD회원국 한정)로 이주한 한국인은 4만 3천명이며, 전체 재외동포는 약 708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바야흐로 '이주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은 과연 현재만의 일일까.
한국고대사학회(회장 여호규)는 7월 16일에서 17일까지 이틀간 국립공주박물관에서 「동북아 국제정세와 한국 고대의 이주·정착」을 주제로 제27회 하계세미나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공주시, 전북문화유산연구원, 중앙문화유산연구원, 충남역사문화연구원이 후원했다.
첫날의 본격적 논의에 앞서 김영심(한국외대)이 「한국 고대의 이주와 사회변화」 기조발표를 했고, 전문가 7명의 주제발표가 이어졌다.
주제 발표는 ▲진·한 교체기의 주민이동과 고조선(송호정, 한국교원대) ▲한군현과 한반도 인구 이동과 정착(김병준, 서울대) ▲385년 고구려의 요동·현도 공격과 요동지역 인구이동(이정빈, 경희대) ▲고고자료를 통해 본 4~5세기 한반도에서 일본열도로의 이주와 정착(조성원, 경주문화유산연구소) ▲고구려 유민의 이주와 정착(김수진, 국민대) ▲백제유민의 이주와 정착(박윤선, 대진대) ▲신라 중대의 유민통합정책과 인구재편(최희준, 국민대)으로서 고조선에서부터 통일신라기까지 한국사에서 전개된 이주와 유민 등 인구이동과 그에 대한 통합정책까지 살펴볼 수 있었다.
둘째날에는 종합토론이 이루어졌는데, 토론자로는 조원진(한양대 문화재연구소), 안정준(서울시립대), 정재균(충북대), 김대환(국립경주박물관), 조재우(동국대), 박지현(서울대), 한준수(국민대) 등의 전문가가 자리하여 전날의 발표자들과 심도있는 토론을 진행했다.
'한군현과 한반도의 인구 이동과 정착'을 발표하는 김병준(서울대)
2000년대 이후 고구려, 백제, 신라 등 유민과 이주민들의 묘지명이 중국에서 다수 발견되면서 역사학계에서도 '유민' 연구가 성황을 이루게 되었지만, 사실 국내외 역사서에는 이미 다양한 이주의 기록이 전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진승 등이 일어나 천하가 진나라에 반기를 들자, 연·제·조의 백성 가운데 조선 땅으로 피한 자가 수만 명이이었다", "진한의 노인들은 대대로 전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옛날의 망명인으로 진나라의 고역을 피해서 한국으로 왔는데 마한이 동쪽 땅을 떼어 주었다"는 『삼국지』 동이전의 기록이다.
고대의 '망명'은 법률적 용어
눈길을 끌었던 것은 고대의 '망명(亡命)'이라는 개념이다. 김병준은 고조선에 대한 기록인 『사기』 조선열전이 동시대 한나라의 법률 용어에 기반해 작성된 점을 강조하는 입장에서, '망명'은 단순히 '도망'이나 '이주'의 정도가 아니라 중국의 입장에서 봤을 때 중죄를 지었으나 재판에 참석하지 않고 도망간 사람들에 대한 호칭이라는 것으로 본다. 게다가 관리나 군인, 일반민들조차 새로운 지역으로 이주하는 것을 극히 꺼렸던 점을 고려하면 고대의 '이주민'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고조선의 왕이 된 위만 역시 '성+이름'이 아닌 '관직(위)+이름(만)'으로 보아 역시 자신의 상관인 노관이 한을 배반하고 흉노로 달아나자 그 휘하로서 사형죄에 처해지는 것을 피하기위해 부득이하게 고조선 지역으로 탈주한 것이며, 그가 거느렸다고 하는 '연·제의 망명자들' 역시도 그러한 개념으로 봐야 한다 주장한다. 이 해석은 종합토론에서 송호정의 공감과 동의를 얻기도 했다.
이주 관련 고고문화에 대한 거시적 조망 필요
한중일의 변경 지역마다 존재하는 서로 다른 문화의 교류 흔적에 대해서도 동아시아 전반을 아우르는 폭넓은 연구가 요청된다. 송호정은 종합토론에서 서북한 지역에서 다양한 중국계 유물이 나오는데, 문헌에서 '연·제·조'라고 했으니 그 성격과 그 문화 분포를 더욱 세밀하고 깊게 보는 연구가 더 많이 이뤄졌으면 좋겠다고 발표의 소회를 밝혔다.
일본에 남아 있는 고대 한반도 이주민의 유적·유물에 대한 발표를 맡은 조성원(경주문화유산연구소)은 일본의 '도래인' '귀화인' 관련 연구 성과를 정리하며, 대표적인 '도래인' 유물로서 부뚜막과 시루 등의 취사기를 본뜬 명기나 한반도계 토기를 소개하였다. 김수진(국민대)는 중국 연운항시의 봉토석실묘를 소개하며 백제 혹은 고구려 유민, 신라 이주민이 남긴 것일 가능성에 대해 보는 연구 성과들을 소개하였다. 이러한 고고학 성과를 참조하여 단순히 한일, 한중 간이 아닌 동아시아 전체상을 그려볼 수 있는 연구가 기대된다.
'신라 중대의 유민통합정책과 인구재편'을 발표하는 최희준(국민대)
앞으로의 연구가 더 기대되는 분야
백제 유민인 예씨 일족 4명의 묘지명을 분석한 박윤선(대진대)은 각각의 묘지명이 서로 내세우는 예씨의 출자와 조상 내력이 서로 다른 점에 주목하여 중국의 성씨 계보 정리의 역사와 백제의 성씨 사용 상황을 넘나들며 고대의 성씨 사용에 대한 의미있는 논의를 시도했다. 김영심(한국외대)의 기조발표에서 과연 '출자 의식'에만 초점을 맞추는 것이 괜찮은지 학계의 연구상황에 대한 반성도 있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를 벗어날 수 있는 새로운 시각을 보여주었다.
이번 한국고대사학회 하계 세미나는 학계의 성과를 정리했다기 보다는 오히려 미개척 분야를 다시금 확인한 자리가 된 것 같다. 특히 문헌과 고고자료를 유기적으로 연결할 필요성이 크게 느껴졌으며, 사회학이나 인류학 이론과 접목시켜, 이쪽 아니면 저쪽이라는 이분법적 정체성 논리에서 탈피하는 추후의 연구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