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절 연휴 가족과 함께해야 할 시간을 미루고 봉사활동에 참여한 기아국가유산지킴이와 대학생 일반시민(사진 민병옥)
2025년 8월 17일, 무더위와 소나기가 번갈아 내리는 여름날, 기아국가유산지킴이 회원들과 대학생, 시민들이 벽진서원에 모였다. 이날의 주제는 바로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전통 체험(콩댐)이었다. 광복절 황금연휴임에도 가족과의 시간을 잠시 미뤄두고 참여한 이들의 얼굴에는 설렘과 열정이 가득했다.
■ 세 시간의 씨름, 그러나 완성된 순간의 뿌듯함
콩댐은 불린 콩을 갈아 만든 천연 코팅제로, 옛 선조들이 목판과 목재 건축을 보존할 때 사용하던 방식이다. 이날 체험은 쉽지 않았다. 무려 10시간 물에 불린 콩을 맷돌식 기계에 넣고 갈아내는 작업은 껍질이 쉽게 갈리지 않아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땀방울이 줄줄 흐르는 순간에도 참여자들은 서로 힘을 보태며 끝내 고운 콩댐을 완성했다.
“한 번에 잘 되지 않으니 오기가 생기더라구요. 마치 조상님들이 옆에서 ‘끝까지 해보라’고 격려하는 것 같았어요.” 한 참가자의 소감은 현장의 뿌듯함을 잘 보여주었다.
콩댐 준비작업과 업무분담, 잘 갈린 콩은 광목주머니에 담는 작업
■ 벽진서원 숭본당, 특별한 무대
체험 장소는 벽진서원 숭본당 마루였다. 1년에 한두 번만 개방되는 귀한 공간에서 진행되어 더욱 의미가 깊었다. 김오현 강사는 벽진서원과 회재유집목판의 가치를 설명하며, 콩댐이 단순한 체험이 아닌 문화재 보존의 살아있는 지혜임을 강조했다.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된 회재 박광옥 선생이 남긴 유집목판이 있는 의열사
■ 벽진서원은 임진왜란 시 공을 세운 회재(懷齋) 박광옥(朴光玉1526년 ~ 1593년) 선생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이곳에 특별한 것은 벽진서원에 소장된 유물이 있다.
1996년 3월 19일에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된 회재 박광옥 선생이 남긴 유집목판이다. 회재유집의 내용은 1권은 시(詩) 299수, 2권은 잡서(雜書) 2편과 서(序) 2편 등 6편, 그리고 별책부록을 포함한 부록이 목판과 함께 전해지고 있다.
박광옥은 선조 25년(1592)에 임진왜란이 터지자 고경명, 김천일과 함께 의병을 일으켰으며, 권율 장군을 도와 많은 공을 세웠다. 유집은 임진왜란 이전과 전쟁 당시의 기록으로서 임진왜란 전과 후를 연결하는 시대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콩댐체험은 두번 세번 덧칠과 말리는 작업을 반복한다.
■ 금당산 숲에서 자연을 품다
콩댐 체험 후에는 서구8경 중 제2경인 금당산 숲길이 기다리고 있었다. 황토맨발길을 걸으며 발바닥에 전해지는 흙의 기운을 느끼고, 황토를 물감 삼아 면봉을 붓처럼 사용해 그림을 그려보는 특별한 체험은 참가자들에게 힐링과 즐거움을 동시에 선사했다.
“맨발로 흙길을 걸으니 몸이 가벼워지고, 황토로 그림을 그리니 아이로 돌아간 것 같았어요.” 또 다른 참가자는 환한 웃음으로 감상을 전했다.
금당산 숲에서 펼처진 박미경 강사의 맛깔난 해설과 체험으로 모두의 만족감을 주었다.
■ 누구나 한 번쯤 해보고 싶은 체험
콩댐은 단순한 접착제가 아니라, 세월을 견디며 문화유산을 지켜온 전통 기술이다. 손끝에서 완성되는 콩댐의 질감, 땀방울 속에 스며든 조상들의 지혜, 그리고 숲속에서의 맑은 공기와 웃음. 이날 벽진서원에서의 하루는 그 자체로 살아있는 역사 수업이자 자연과 함께하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기아국가유산지킴이의 이번 활동은 단순히 ‘봉사’가 아닌, 누구나 한 번쯤 꼭 경험해보고 싶은 특별한 체험이었다. 전통과 자연이 어우러진 이 길에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한다면, 우리 문화유산은 더욱 든든하게 지켜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