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석자들이 기신제향 봉행 후 단체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의친왕기념사업회(회장 이준)는 지난 15일, 광복 80주년을 맞아 홍유릉에서 대한제국 황족이자 독립운동가인 의친왕 이강의 서거 70주기를 기리는 기신제향을 궁중 예법에 따라 성대히 봉행했다.
이날 행사에는 황실 후손 20여 명을 비롯해 세종대왕 사가독서의 사육신·생육신 후예, 연안김씨 및 여흥민씨 후손 등 300여 명이 참석했으며, 의친왕 묘역까지 산릉 행렬을 이어가며 참배를 진행했다.
제향에는 초헌관으로 의친왕의 장손 이준 황손, 아헌관으로 연안김씨 대종회 김사권 회장, 종헌관으로 세종대왕 사가독서 이찬희 이사장이 참여했으며, 고종황제의 후손 20여 명이 제관으로 함께 예를 올렸다.
의친왕 이강은 일본 유학과 미국 로녹대학(Roanoke College) 수학을 거쳐 김규식·안창호 등과 교류하며 해외 독립운동 인맥을 쌓았다. 귀국 후에는 대한제국 육군 부장(3성 장군)으로 임관하여 군대를 통솔했다.
그는 대한적십자사 총재로 임명되어 서양 의학을 국내에 적극 도입하는 한편, 사동궁을 비밀 독립운동 거점으로 운영했다. 1912년 세운 봉황각은 훗날 3·1운동의 발상지가 되었으며, 안창호·김가진과 함께 항일 투쟁을 이어갔다. 1915년에는 신한혁명당의 고종황제 북경 망명 시도에 연루되어 측근들이 대거 투옥되기도 했다.
1919년 고종 독살설이 확산되자, 의친왕은 독립신문에 친필 성명을 발표하며 “조국의 독립과 세계 평화를 위한 투쟁”을 선언했다. 안창호 국무총리는 비밀작전 ‘의친왕을 임시정부로’를 추진했고, 이에 의친왕은 “차라리 자유 한국의 백성이 될지언정 일본 황족이 되지 않겠다”는 편지를 임시정부에 보냈다. 그는 조선 최대 항일 비밀결사인 대동단의 명예 총재로서 독립운동 단체 통합에도 힘썼다.
1955년 세상을 떠난 뒤 능동 어린이대공원에 위치한 의왕릉에 안장되었으나, 골프장 개발로 인해 서삼릉으로 이전되었다가 1996년 의친왕과 의친왕비 후손들의 주도로 홍유릉으로 이장되었다. 현재는 고종황제, 순종황제, 영친왕, 덕혜옹주 등 황실 가족들과 함께 안장되어 있다.
의친왕의 장손 이준 황손은 “의친왕과 황실의 독립운동사는 우리 근현대사에서 철저히 의도적으로 지워지고 잊혀졌다”라며 “광복 80주년을 기념하여 대한황실에 잘못 씌워진 식민사관의 프레임을 거둬내고, 황실 항일운동사와 의친왕의 정신을 재조명하여 후대에 잊히지 않도록 전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김희태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