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봄이 왔군요.

저는 밭에도 가고, 나물도 캐고, 또 나물반찬도 먹고하니까 봄이 돌아온 것을 실감합니다.

몇일 전에는 밭에 갔답니다. 조금 높은데다가 길게 이어진 산과 연결된 야산 기슭에 있거든요. 아내가 앉아서 따사한 햇볕을 조이면서 칼질을 하는데, 후다닥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퍼뜩 머리를 스치는 것이 있어 고개를 산 쪽으로 돌려보니 고라니가 튀어 올라가는 게 보이더라고요. 전에는 멧돼지까지도 보았답니다. 고라니들을 마주치면 구면처럼 반가웠었는데. 근래에는, 아니 작년에는 몇 번 못본 것 같습니다. 아무튼 너무 반가웠습니다. 갑자기 자연이, 세상이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고, 심장에 피가 빨리 도는 것 같더라고요. ‘고기’가 아니라 살아있는, 그것도 날쌔게 뛰는 생명체를 확인했기 때문이지요.

역사는 과거를 창조하는 작업입니다. 인간이 ‘신’의 영역에 도전할 수 있는 것은 미래가 아닙니다. 미래는 변형 그것도 약간의 변형이 가능할 뿐입니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가 만든 과거를,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도 다시 만들어 갈 수가 있습니다. 해석을 할 수 있고, 그 해석의 영향을 받기때문이지요. 과거의 다양한 창조는 신조차도 할 수 없는 일이지요. 어느땐가 이런 걸 알아챈 조상들은 신을 능가하는, 때로는 조롱도 하는 인간에 관한 이야기들을 많이 만들었지요. 신화.

왜 역사가, 특히 고대사 공부가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몇가지가 이유가 있습니다만 오늘은 이걸로 끝내려고 합니다.

아무튼 이러한 극심한 혼란과 재편의 시기에 사람들은 과거와 미래를 동시에, 한 곳에서 지향하려 합니다. 저도 또한 늘 미래를 지향하지만 늘 과거를 달고 살면서 우왕좌왕하는 사람입니다.

봄 날이 무르익고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순간들입니다.

마음 껏 봄 날들을 누리십시오.

춘(春)설이 신기들린 선중의 붓질처럼 한 밤을 새하얗게 휘젓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