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초 양과동정에서 바라보는 들녘은 보리 익고 모내기 한창인 전형적인 농촌의 모습이다 정자에 앉아 맞는 바람은 꿀맛! 이런 날 광주시민과 함께 지킴이 활동을 하였다.
양과동정 유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형만 지도사
◆ 양과동정은 개인 소유가 아닌 마을 공유 정자라는 뜻의 ‘동정(洞亭)’으로 되어있다. 정자 안에는 「양과동적입의서」 「양과동적중수기」 등이 걸려 있어 마을 공동의 동약 시행처였음을 알려주고 있다
◆ 양과동정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던 마을의 향약은 성종과 연산군 무렵에 만들었던 동족에 의해 실시되었다. 「양과동적입의서」는 선조 37년(1604년) 유사정이 쓴 동적의 서문으로 양과동 동약의 유래와 중국 송나라 때 남전여씨 향악의 뜻을 잇고자 했던 양과동 동약의 의의를 밝히고 성종과 연산군 무렵 처음으로 동민의 신상정보 등이 담긴 동적을 만들었는데 시간이 지나 난리로 인해 옛 동적부가 병화로 소실된 이후 이 서문을 쓰게 된 배경, 공자가 향당에 들어섰을 때의 몸가짐에 대한 고사를 들어 향당의 중요성에 대해 강조하고 있다. 양과정의 선비들은 난 후 향촌 복구 과정에서 지혜를 모아 선조 37년에 다시 중수하였다.
◆ 양과동계는 1604년 중수한 뒤 현재까지 기본 틀을 잃지 않고 전해지고 있다. 당시 동계의 범위가 사방 30리였다고 한다. 양과동계의 중심이었던 양과동정을 많은 사람이 모여 공동체인 여러 마을에 대한 대소사를 의논하기도 하고 또는 마을 주민들의 휴식처이기도 했다.
◆ 무엇보다도 양과동정은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정자의 명칭이 양과정이 아닌 양과동정이라 한 것은 바로 공동체 정신을 말해주는 것이다. 정자가 이렇게 동약의 시행처가 되었다는 점은 향토사나 향촌사회에서도 매유 중요하다.
◆ 국가유산지킴이지도사들은 함께 참여한 10여 명의 시민들과 정자 주변정화활동 팀, 정자 거미줄 제거 및 마루 청소 팀, 모니터링 활동 팀, 화장실 청소 팀으로 나누어 활동을 하였고정자에 앉아 느껴보는 활동을 하였다. 또한 양과동정 홍보하기 위한 나만의 방법을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고 비석에 홍보팁을 담기도 하였다.
양과동정 홍보자료 만들어 발표하는 참여자들의 모습
◆ 꾸민 비석으로 다양한 방법으로 비석치기 체험활동을 실시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즐거워하였다.
◆ 자원봉사활동은 단순히 몸으로 하는 봉사만 생각했었는데 국가유산지킴이 자원봉사활동은 국가유산 현장에서 국가유산에 대해 알게 된 계기가 되었고 주변 청소를 하면서 우리가 깨끗하게 가꾸어 이곳에서 다양한 활동도 하게 되어 새로웠다고 하였다. 다음에도 참여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참고자료: 김희태, 「광주문화재단 누정총서 9 부용정 양과동정」,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