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장산내장사를 지나 10여분을 오르면 조선왕조실록 이안 입구를 만난다. 하지만 이안 입구바로 지나 무허가 건물로 눈살을 찌뿌리게 만든다.(사진 한병기)

11월 15일 이른 새벽, 내장산은 깊어가는 가을빛을 고요히 머금고 있었다. 오늘은 유난히 바람이 매섭지 않았다. 하지만 새벽 공기 속에는 분명 손끝을 시리게 하는 찬 기운이 남아 있었다. 일출을 기다리며 전국에서 모여든 등산객과 사진가들이 단풍빛 물결 속을 오갔고, 붉은 숲 위로 떠오를 태양을 향해 분주히 셔터를 눌렀다.

이안길은 안내판부터 도로면까지 정리가 잘되어 있어 주차장에서 왕복 1시간 30분정도 소요된다.

그러나 나는 그들과 다른 길을 택했다.

오늘의 발걸음은 단풍이 아닌, 조선왕조실록을 지켜낸 ‘이안길(移安길)’로 향했다. 이 길은 화려한 단풍 뒤편에 숨어 있지만, 그 어느 길보다 묵직한 역사와 숨결을 품고 있다. 이안길은 용굴암보다, 금선폭포, 내장산 8봉 중 까치봉과 윤필봉으로 오르는 등산로로 알려져 있지만, 당시 실록을 지켜낸 ‘역사의 길’임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단풍놀이에 나선 등산객의 셀카 장면 이안길에서

■ 험준한 바위 절벽을 넘던 그 길

지금은 난간과 계단이 잘 정비되어 있지만, 400여 년 전 이곳은 거친 암릉과 미끄러운 흙길뿐이었다. 조선의 역사를 통째로 등에 짊어진 이들이 이 길을 오르내릴 때, 그들의 어깨에는 단지 책이 아닌 나라의 정신이 실려 있었다.

특히 용굴암(龍窟)에 이르면 절벽 중턱에 매달린 암자의 위태로운 위치가 그 시절의 긴박함을 고스란히 전해준다.

오늘날 관광객이 “멋지다”라며 사진을 찍는 그 자리, 1592년 임진왜란 당시에는 전주사고의 실록과 태조어진을 ‘잠시라도 숨겨야 했던’ 절체절명의 피란처였다.

오르는 길가에 이안길에 대한 설명과 조손왕조실록을 잘 설명하고 있다.

■ 실록을 지킨 이름들 — 안의와 손흥록, 그리고 백성들

이안길을 따라 오르다 보면, 실록과 태조어진을 지켜낸 선조들의 흉상이 조용히 서 있다. 그중에서도 두 인물이 유독 빛난다.

이안길을 오르내리던 백성들의 모습을 계곡길에 소개하고 있다.

● 안의(安義)(1529-1596) — 국가의 혼을 지켜낸 결기의 선비

전주사고의 위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실록 이안을 건의한 이는 안의였다. 전황이 급박해지자 그는 자신의 안위를 뒤로한 채 험준한 내장산 골짜기를 스스로 열며 실록을 옮겼다. “이것이 사라지면, 후손은 역사를 잃는다.”

그의 결단은 실록과 태조어진이 은적암과 비래암까지 무사히 옮겨지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안의의 이름은 지금도 내장산 바위에 남아, 역사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조용히 일깨운다.

길가에 안내판을 읽어가면 이안길에 대한 궁금증을 해소할 수 있다.

● 손흥록(孫興祿)(1537-1600) — 실록을 품고 밤을 밝힌 태인의 유생

태인 출신 유생 손흥록은 실록을 지키기 위해 단 하루도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

밤에는 횃불을 들고, 낮에는 짐을 등에 진 채 1년 넘는 시간을 내장산과 아산, 묘향산으로 이어지는 이안의 길 위에서 보냈다. 그는 학문보다 ‘의리’를 선택한 선비였다.

“지식보다 행동이 나라를 지킨다.” 그의 손끝에서 실록은 꺼지지 않는 불빛이 되었다.

이들과 함께한 이는 관찰사 이하 관리들, 경기전 참봉 오희길, 그리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전라도의 선비와 백성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한마음이었다. “역사를 잃으면, 나라도 없다.”

그들의 밤낮 없는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 『조선왕조실록』을 온전히 마주할 수 있다.

용굴암에 가는 길은 정리도 잘되고 안내판까지 완벽할 정도다. 용굴암은 바위절벽 중간에 위치해 그 당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장소라고 느껴진다.

■ 이안길을 걸은 오늘, 다시 새겨본 의미

내장산의 단풍은 여전히 찬란했다. 그러나 나의 마음을 더 깊게 울린 것은 산바람 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그들의 숨결이었다.

역사는 기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록을 지켜낸 사람들의 손과 발 위에 서 있는 것임을 이 길은 조용히 말해준다.

오늘도 이안길은 묻고 있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가.”

2025년 내장산의 단풍을 이렇게 물들어 갔다.

■ 잊혀진 ‘이안길’, 다시 걷고 다시 기억해야 할 우리의 길

지금의 내장산은 단풍 명소로만 알려져 있지만, 그 숲길 안에는 국가의 혼을 지켜낸 길, ‘이안길’이 숨 쉬고 있다. 이 길은 단순한 등산로가 아니라, 조선의 역사를 품고 후손의 미래로 이어준 생명의 길이었다.

오늘날 이 길을 찾는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한 걸음 한 걸음이 선조들의 숨결을 느끼는 역사교육의 현장이며, 후손에게 국가유산의 소중함을 전할 수 있는 살아 있는 교과서이다.

이제 우리는 단풍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그 아래 숨어 있는 ‘이안길의 정신’을 함께 기억하고 알려야 한다. 전주사고의 실록을 지켜낸 안의와 손흥록, 그리고 이름 없는 백성들의 손길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은 역사를 잃지 않았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산길일지 모르지만, 그 길을 알고 걸을 때 비로소 내장산은 산이 아니라 ‘기억의 성전’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