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사학회(회장 김선주)는 9월 20일 중앙대 법학관에서 「최신 금석문 자료로 본 고대 한중관계사 연구」를 주제로 제233회 월례 발표회를 개최하고 최근 중국에서 새롭게 보고된 한국사 관련 금석문 자료 3건을 소개했다. 발표에 앞서 작년에 부산외대에서 퇴임한 권덕영 교수가 「한국고대사 연구 40년 단상」의 주제로 자신의 학문 여정에 대한 회고와 성과를 정리하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동료·후배 학자들이 자리에 함께하여 권덕영 교수와의 일화를 나누기도 했다.
주제발표는 ▲중국 산동 효당산석사의 신라 관련 명문 재검토(최희준, 국민대) ▲재당 신라인 김영 묘지명 검토(김영관, 충북대) ▲고구려 유민 고충운(高沖雲) 묘지명에 대한 고찰(루정호, 절강해양대)로 이어졌다.
첫번째, 최희준(국민대)의 「중국 산동 효당산석사의 신라 관련 명문 재검토」는 팬데믹 시기에 한국사 관련 명문이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깊이 있게 다뤄지지 못한 효당산석사(孝堂山石祠)를 소개하고 그곳에 새겨진 한국사 관련 8건의 명문을 재검토했다. 중국 산둥성 지난시 효당산 정상에 위치한 효당산석사는 후한 초인 1세기 무렵에 무덤 곁에 세운 사당인데, 내부에 복희와 여와, 공자와 노자 등의 다양한 인물 고사를 그림으로 새긴 화상석(畫像石)으로 유명하다. 그런데 이 사당은 6세기 후반부터는 유명한 효자 곽거(郭巨)의 묘로 알려져 유명세를 탔고 후한시대에서 청나라에 이르기까지 방문객들이 남긴 명문이 150건이 넘게 확인되고 있다.
최희준 박사는 기존 알려져 있던 신라 관련 명문 8건 중 6개만이 실제 신라 관련 명문일 것이라고 추론하였고, 이들 명문은 삼국통일이 진행되고 있던 7세기 후반에 집중되고 있었던 것을 확인하였으며, 명문에 나오는 인명 중 '김원기(金元機)' '김만(金萬)' 등을 다른 신라의 사행 기록과 대조하여 인물을 특정하고 추가 행적을 추정해보는 참신한 시도를 했다.
두번째 발표 김영관(충북대)의 「재당 신라인 김영 묘지명 검토」는 지난 6월 학계에 보고된 중국 시안에서 발굴된 신라질자 김영의 묘지에 대한 분석이었다. 김영 묘지명은 중국에서 보고서가 나오자마자 한국 언론에서도 대서특필하는 등 여론의 관심을 크게 모았는데, 주로 김영의 조부 김의양이 "신라국 고왕(故王)의 당형(堂兄)"이라고 한 부분과 김영의 부친의 이름에 대한 해석이 문제의 중심이 되었다.
마지막 발표 루정호(樓正豪) (절강해양대학)의 「고구려 유민 고충운(高沖雲) 묘지명에 대한 고찰」은 앞서 두 발표가 이미 중국학계에서 먼저 보고가 된 금석문을 다룬 것과 달리, 한중 학계를 통틀어 처음으로 고구려 유민 4세 고충운의 묘지명을 소개한다는 점에 주목받았다.

고충운 묘지명 개석과 지석 탁본
이 묘지명에는 고충운을 "평원(平原) 발해인"이라 소개함과 동시에, 그의 가계를 "해동 구려국의 왕족"으로 서술하고 있음이 주목된다. 또한 이 묘지명에는 고충운의 증조부 고달-조부 고몽-부 고문급의 내력이 적혀 있는데, 이중 증조부 고달은 '국내성왕(國內城王)' , 조부 고몽은 '국내성 좌상(左相)'을 역임했다고 한다. 발표자 루정호 교수는 고구려 멸망 후, 국내성이 당의 기미주(羈縻州)가 되었으니 '국내성왕'이라는 것도 기미주의 수장인 도독이나 자사 정도의 급일 것이며, 이들 고달과 고몽이 다른 문헌에서 보이지 않아 명예직일 것이나 종족 내에서는 왕으로 불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묘지명에 따르면 원래 학문을 탐독하였던 고충운은 갑자기 "붓을 버리고 군에 입대했다"고 한다. 이에 대해 루정호 교수는 고충운과 비슷한 시기에 죽은 다른 인물들의 묘지명을 검토하여 당말에 일어난 안사의 난(755~763)으로 인해 그가 무장의 길을 선택하였음을 암시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고충운은 여러 차례 승진하여 유격장군·좌우림군대장군·상주국 등에 제수되었고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 장기간 태원에 주둔하다가 774년 태원군의 관사에서 사망했다.
루정호 교수(절강해양대)와 토론하는 안정준 교수(서울시립대)
이번 고충운 묘지명이 발굴된 곳은 중국 섬서성 함양시 위성구(渭城區) 동북부에 해당하며, 이곳에서는 전국시대부터 청나라 때까지의 약 2200여 년에 이르는 시기의 고분이 1만 기 넘게 발굴되고 있는 고대 분묘 밀집지역이다. 일명 '홍독원(洪瀆原) 묘군'이라고 불리는 곳이기도 하다. 올해 섬서성 고고연구원에서는 이곳에서 나온 신출토 묘비명을 집성하여 책을 출간할 예정이며, 고충운 묘지명 역시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중국에서 발굴 사업이 활발히 진행됨에 따라 한국사 관련 인물들의 묘지명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새롭게 보고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국내 연구자들간에 신출토 자료를 학계에 보고하는 경쟁이 심화되어 그 내용이 충분히 숙려되거나 충실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 따라서 이제는 개별 묘지명 분석에서 더 나아가 전체를 아우르는 종합적인 공동 연구가 시도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