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있는 유촌동석조여래좌상의 전경(사진촬영 김오현)

▶유촌동석조여래좌상(楡村洞石造如來坐像)

종 목 광주광역시 문화유산자료
명 칭 유촌동석조여래좌상
지정일 1996. 03. 19
소재지 광주광역시 서구 유촌동 497번지

광주광역시 서구 유덕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있는 조선시대 석조 불상은 주민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던 특별한 불상이었다. 바로 광주광역시 문화유산자료인 '유촌동석조여래좌상(楡村洞石造如來坐像)'은 1996년 광주광역시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된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불상은 본래 쌍촌동 운천사(運泉寺, 옛 정토사 또는 극락암)에 모셔져 있었으나, 1939년 당시 극락면의 중심지였던 유촌동 주민들에 의해 현재의 위치로 옮겨졌다. 당시 유촌동은 왕래하는 사람이 많았음에도 마땅히 기원할 곳이 없어, 주민들이 힘을 모아 불상과 대좌를 옮겨왔다고 한다. 마을의 평안과 주민들의 염원을 담아 새로운 터전을 마련한 불상은 오랜 세월 동안 그들의 곁을 묵묵히 지켜왔다. 그러나 평온했던 시간도 잠시, 불상에 대한 소문 하나가 퍼지기 시작했다. "불상의 코를 깎아 먹으면 아들을 낳는다."는 이야기였다. 이 소문은 유촌동 주민들뿐만 아니라 오가는 사람들에게까지 퍼져 불상의 코는 훼손되기 시작했다. 심지어 당시 동사무소 직원들이 불상을 지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코를 깎아가는 일이 빈번했다고 한다. 그 결과, 현재는 불상의 얼굴 윤곽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이 심해졌다. 높이 185cm, 폭 119cm의 당당한 위용은 여전하지만, 정작 부처님의 얼굴은 그 간절한 바람들로 인해 형체를 잃어버린 것이다. 비록 훼손은 심하지만, 불상 곳곳에는 중요한 역사적, 예술적 특징들이 남아 있다. 머리 뒤쪽에 일부 남은 무늬와 상투 모양의 머리 묶음, 그리고 엄지와 검지를 가볍게 쥔 오른손의 모습은 뚜렷하게 남아있다. 특히 오른손의 수인(手印, 손모양)은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 서방 극락정토에 있으면서 죽은 이의 영혼을 극락왕생의 길로 이끌어주는 부처)의 상생인(上生印)을 취하고 있어, 왼손의 훼손된 손 모양 역시 아미타여래(阿彌陀如來)의 구품인 중 하나일 것으로 추측된다. 또한 당당한 어깨에 비해 짧은 팔, 가는 허리, 그리고 과장되게 표현된 무릎과 옷자락 등은 전체적인 불균형을 이루지만, 이는 고려 시대의 양식을 계승한 조선 전기 불상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훼손과 수난의 역사,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낳은 비극의 산물인 유촌동석조여래좌상의 현재의 모습

유덕동 행정복지센터 앞에 있는 조경석 같은 모습이 안타깝게 느껴진 유촌동석조여래좌상

이렇게 유촌동석조여래좌상(楡村洞石造如來坐像)은 한때 아들을 낳고 싶다는 사람들의 절박한 소망이 담긴 대상이었지만, 동시에 그 소망으로 인해 가장 중요한 부분인 얼굴을 잃는 아픔을 겪었다. 그러나 불상에 남아있는 시대적 특징들은 훼손의 아픔 속에서도 여전히 그 가치를 빛내고 있다. 유촌동석조여래좌상(楡村洞石造如來坐像)은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민간 신앙의 역사이자, 불교 조각사의 흐름을 엿볼 수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으로서 우리 곁을 지키고 있다. 이 불상은 사라진 코의 비밀을 간직한 채, 오늘도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키며 우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한가지 아쉬운점은 고려시대 양식을 잇는 조선 전기 불상을 행정복지센터 앞의 조경석(造景石)처럼 방치되어 있는 모습이 너무 아쉽다.

🔳 참고문헌

1. 산길나그네, [광주 유천동 석조여래좌상], 네이버 블로그 '산길나그네와 옛님..', 2020.

2. 최원종, [유촌동석조여래좌상], 한국학중앙연구원 - 디지털광주문화대전, 2022.

3. 허민, [유천동석조여래좌상], 국가유산포털-국가유산청,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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