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특히 신라불교는 침략도 수입도 아닌 자생신앙이었다. 중앙집권체제로 국력 신장을 위해 왕실 비서실장격인 이차돈 직위인 박염촉의 순교로, 국교로 발을 내렸다.
단군네가 천제를 올리던 절터인 소도에 사찰을 짓고 절이라 이르면서, 민속인 산신-칠성-용왕까지 동행하면서 토속화를 이루어냈다.
민족정신 문화는 미래불인 미륵신앙을 민족 미래사에 접목시켜 공생했기에, 한국 미륵신앙은 민족사회 운동이 되었다.
진흥왕은 백성에게 우리 미륵 아기를 낳아 달라 하소연했고, 부모는 미륵 아기일세라 아기에게 존대어를 쓰는 풍습과 생명 존중하는 사람 중심 문화가 뿌리내리는 계기가 되었다.
진흥왕 때 손자로 태어난 진평왕은 왕자가 없어 큰딸 덕만 공주가 고심하다가, 당시 국토 최서단에 있는 마니산 참성단, 생명을 점지해 주시는 삼신할머니가 계신 三神山에 올라, 민족통일로 세계 평화를 이룰 단군네 점지를 빌고 빌었다.
그해가 단기 21合이 7번째인 서기 631년=단기 2964년이었다. 이듬해 등극한 27대 선덕여왕은 동서를 오가며 백성실태를 목격했기에, 정사를 신하에게 맡기고, 1년간 조세를 면해 민심을 수습하면서, 역사 대계를 위한 밀행에 전념했다.
선덕여왕은 참성단 원방각을 바탕으로, 동서남북 춘하추동을 상징하는 4개 문과 24절기를 본떠 24단을 쌓아 올린 첨성대를 365개 벽돌로 완성한 과학대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