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 가깝다는 것은 지리적인 것을 말할테지만 멀다는 것은 서로에 대한 이해일 수도 있죠. 특히 일본의 고대사는 더욱 더 일반 대중의 관심에서 먼 것이기도 합니다. 혹 일본 고대사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일본 천황가가 백제계라는 설에 익숙할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식민지배의 경험은 우리가 그래도 고대에는 일본인보다 우월했다는 정신승리에만 머물게 한 것은 아닐까요. 일본의 근현대사는 물론, 앞으로의 미래까지 꿰뚫기 위해서는 오히려 일본 고대사를 깊이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이번 신간 스토리텔링에서는 『일본서기』, 『속일본기』, 『일본후기』를 역주한 일본 고대사 전문가 연민수의 신간, 『천황제 일본고대국가』(학연문화사)를 분석합니다.
일본 고대사를 관통하는 단 하나의 키워드 '천황주의'
이 책은 일본의 고대사의 특질을 한폭에 그려내기 위한 단서로 '천황(天皇)'이라는 존재에 주목합니다. 왕조가 수없이 바뀐 중국사나 한국사와 달리, 일본에는 '만세일계(萬世一系)'로 상정되는 천황가가 계속 이어져 내려왔다는 자부심이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천황'은 어떻게 만들어졌고, 어떻게 존재했는가, 일본이란 나라에서 대체 어떤 의미를 갖게 되었는가가 이 책이 다루는 주요 내용이기도 합니다.
천황제 국가의 기반을 닦은 천무천황과 지통천황
저자는 '천황'이라는 왕호는 서기 680년대에 만들어진 것이라 말합니다. 뿐만 아니라 오랫동안 사용해왔던 '왜(倭)'라는 이름을 버리게 된 '일본'이라는 국호도, 태양신과 관련된 건국신화마저도 모두 비슷한 시기에서 비롯되었다고 지적합니다. 이 시기 일본의 군주는 천무천황(天武天皇)이었는데요, 그는 7세기 국제 전쟁의 여파인 백제 멸망, 백제부흥군 파병의 실패를 겪으면서 새롭게 강자로 등장한 신라를 의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정치목표는 신라를 능가하는 국가 체제와 왕권을 수립하는 것이었다고 이 책은 말하고 있습니다.
한편, '천황'이라는 대외적 표출은 신라에게는 7세기 후반 효소왕대부터 나타나지만, 중국에는 그보다 늦은 8세기 초 측천무후 때에 드러나는데요. 나름 중국의 눈치를 보았다는 점에서 '천황' 칭호는 일본 내부를 향한 권위의 표현으로서 출발한 것으로 이해해야 하겠지요.
신라를 번국으로 보는 자국중심의 독선적 역사인식은 중국의 중화주의와 닮아
천무천황은 『일본서기』 편찬을 통해 나라의 탄생과 천황가의 역사를 새롭게 정리했는데, 아마도 '일본'이라는 국호도 이 책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천무천황의 아내이자 그 뒤를 이은 지통천황(持統天皇)은 남편을 이어 '위대한 천황가'의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바로 그녀의 시대에 신라왕자 천일창(天日槍) 전승을 쏙 빼닮은 신공황후 신라정벌담이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천일창(天日槍)이 일본으로 이주한 경로와 신공황후의 원정 경로는 놀랍도록 일치하고 계보상에서도 천일창은 신공황후의 7대조가 되기 때문에 두 전승은 관련 씨족이 만들어낸 조상기원설화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천무와 지통천황은 이를 천황가의 역사에 포함시켜 일본은 신국(神國)이고 한반도의 여러 나라들은 마치 고대로부터 일본의 조공국이었던 것처럼 묘사하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역사 인식은 『일본서기』 편찬이후 일본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게 된다는 점에서 그 중요성과 함께 위험성이 감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황'이 이름만 화려한 허울뿐인 존재였을까요?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천황제 국가'인 고대 일본의 통치 시스템을 율령과 관료제, 문서행정을 통해 여실히 드러내준다는 점에 있습니다.
천황제 국가의 양대 축, '신비적 권위'와 '제도적 권력'
이 책에 따르면 천황제 국가인 고대 일본은 '신비적 권위'와 '제도적 권력'이라는 두 바퀴에 의지했습니다. 신비적 권위는 천황 자체가 신의 자손이면서 동시에 신이라는 믿음이었고, 제도적 권력은 천황을 정점으로 한 행정시스템이었습니다.
특히 이 책은 대보율령을 중심으로 율령을 통한 행정 지배가 사회 말단까지 뻗쳐나가는 모습과 더불어, 관료의 교육, 관인(官印) 제도와 종이생산, 호적과 계장(計帳)을통해 문서 행정의 현장감을 더욱 실감나게 드러내주는데요.
율령제 문서행정의 정점에 내인(內印)이라 불린 천황의 인장이 있었으며, 그 날인이 있은 뒤에야 공문서가 비로소 법적인 효력을 가질 수 있었던 사실은 천황의 '권위'가 행정제도 상에 상징적으로나마 강력하게 실재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동아시아 천명사상의 일본화
읽다보면 고대 일본이 우리 생각과는 달리 기록을 열심히 하던 나라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글쓰기로 먹고 살았던 사경생들의 모습도 이채롭습니다. 일본 천황가의 보물창고로 칭해지는 정창원 소장 문서 중에는 불교 경전을 베껴쓰던 사경소 문서가 남아있는데요, 작업량에 비례해 급료를 받고 글자의 누락이나 오자가 나면 급료가 깎이는 모습까지도 여과없이 드러납니다. 휴가를 내거나 병으로 결근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현대의 직장인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기시감을 느끼게 돼죠.
그러나 현대와 다른 점도 있습니다. 흰 꿩이 나타났다고 해당 지역민들의 군역을 면제하는 천무 2년(673)과 같은 일들은 현대에는 기대하기 힘드니까 말이죠. 고대 일본의 천황은 상서와 재이를 크게 의식했습니다. 상서로운 일이든 불길한 일이든 일단 일어나게 되면 관할 관사는 조정에 보고해야 했고, 천황은 포상을 하든 대책을 세우든 해야 했습니다. 천황도 고대 동아시아의 '천명사상(天命思想)'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의 경우에는 천명이 떠나 재이가 일어나면 왕을 바꿔야 했지만 천황가의 신성성이 확립된 일본에서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이 불가능했습니다. 대신에 면세, 사면, 구휼 등으로 재이를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행보를 펼칠 수밖에요.
국내에서 보기 드문 일본 고대사 연구로서 큰 가치
책을 지은 연민수 박사는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실장을 거쳐 2017년 퇴임 후 일본 고대사 연구에 매진해왔습니다. 책의 서문에서 "개인적 연구인생에서 도달점에 서 있는 느낌"이라며 책 발간의 소회를 밝혔습니다. 그간 일본 육국사 역주 작업에 매진해왔던 그의 내공이 책 한 권에 다 담겨 있는 꽤나 두터운 연구서입니다. 한 학자의 평생의 연구를 집대성한 감동이 전해집니다.
(총 558쪽/ 45,000원)
신간 스토리텔링은 일반 대중에게 어려울 수 있는 전문학술서의 내용을 편안한 구어체로 쉽게 전달하고자 하는 도서 소개 코너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