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헌공가훈(忠憲公家訓), 기대아서(寄大兒書) -해남 녹우당 고산 윤선도 박물관 사진

충헌공 가훈(忠憲公 家訓)은 조선 시대 문신 윤선도(尹善道, 1587~1671)가 1660년(현종1, 고산 74세) 함경도 삼수(三水)에 유배 때 큰아들 인미(仁美, 1607~1675)에게 보낸 편지 형식의 가훈이다. 이 글은 자손들이 지켜야 할 아홉 가지 항목을 제시하며, 검소한 생활, 노비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 올바른 자녀 교육, 미신 배격 등 윤선도(尹善道)의 가치관과 삶의 지혜를 담고 있다.

고산 윤선도의 표준영정(위), 고산 윤선도 묘소(아래 왼쪽), 묘소 아래에 위치한 신도비(아래 오른쪽) - 네이버 검색 사진

▶ 충헌공가훈(忠憲公家訓) - 기대아서(寄大兒書)

고산(孤山) 윤선도(尹善道, 1587~1671)는 당대 누구보다도 그 시대 주류세력과 불화한 인물(서로 화합하지 못한 인물) 중에 한명이었다. 윤선도(尹善道)는 총 세 번에 걸쳐 만 17년 동안 유배생활을 했다. 벼슬한 기간보다 유배생활 한 기간이 훨씬 길었다고 한다. 고산(孤山)은 74살 되던 해 유배지 함경도 삼수에서 맏아들 인미(仁美)에게 편지를 보냈다. 후손들에게 지켜야 할 실천윤리를 당부한 ‘기대아서(寄大兒書)’다. 유배에서 돌아온 뒤 어려운 이를 돕기 위해 전답을 마련하고 곡식을 비축하여 ‘의장(義庄,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한 농장)’을 설립하였다. 세상을 뜨기 한 해 전 나이에도 일가 중 가난하고 어려운 이를 위하여 일백 곡의 벼를 내놓아 가난한 사람들을 도왔다. 편지에서 후손에게 한 말을 몸소 실천으로 보여주었다. 고산(孤山)의 실천 정신에 감복하여 손자 윤이석(尹爾錫)이 편지에 ‘충헌공가훈(忠憲公家訓)’이란 제목을 붙였고, 이를 후손들이 금과옥조로 삼았다.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라는 말은 본래 사회 고위층 인사들에게 요구되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명예와 특권만을 누리고 의무를 소홀히 하는 세태가 만연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총 9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는 기대아서 내용

◼️ 주요 내용(主要 內容)

고산 윤선도(高山 尹善道) 삶의 철학과 자녀 교육에 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로 총 9가지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검소한 생활 : 충헌공(忠憲公) 기대아서(寄大兒書)는 자녀들에게 검소하고 절제된 생활을 강조한다. 의복, 음식, 말(馬)과 안장 등 모든 생활용품은 필요 최소한으로 갖추고, 사치와 낭비를 경계해야 함을 강조한다. 이는 물질적 풍요보다는 정신적 가치를 중시하는 가풍을 보여준다.

◾️노비(奴婢)에 대한 인간적인 대우 : 노비에 대한 충헌공(忠憲公)의 태도는 당시 사회에서 보기 드문 애민정신을 보여준다. 노비의 신공(身貢, 조선 시대에 노비가 군역과 부역 대신에 삼베나 무명, 모시, 쌀, 돈 따위로 납부하던 세)을 합리적으로 책정하고, 앙역노비(仰役奴婢, 주인집에 거주하면서 가내 노동이나 경작을 하던 노비)에 대한 배려를 강조하며,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하지 않고 인간적인 대우를 할 것을 당부한다. 또한, 동네 사람들을 함부로 부리지 않음으로써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역설한다.

◾️미신(迷信) 배격, 노비(奴婢) 매매 금지 : 기사(祈嗣, 아들 낳기를 비는 것)에 대한 미신적인 행위를 배척하고 성현의 가르침을 따르는 올바른 신앙관을 강조한다. 또한, 노비 매매와 상행위에 대한 명확한 지침을 제시하여 가문의 번영을 위한 지혜를 보여준다. 특히, 노비 매매의 폐단을 지적하고 시세에 맞는 품삯 지급을 강조한 점은 오늘날의 관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성현의 가르침을 통해 올바른 자녀 교육 : 충헌공(忠憲公)은 자녀들에게 성현의 가르침, 특히 《소학(小學)》을 꾸준히 학습할 것을 당부한다. 이는 올바른 인격 형성과 학문을 통한 가문 번영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가훈을 가문의 흥망성쇠를 결정짓는 중요한 지침으로 여기고 후손 대대로 가슴에 새겨 지킬 것을 당부하며 글을 마무리한다.

고산선생이 82세 되던 1668년 수원에 있던 집을

뱃길로 옮겨와 다시 복원한 지녹우당 사랑채 풍경

조선시대 대표적인 문인 고산 윤선도(高山 尹善道)의 생애와 정신은 오늘날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기게 한다. 특히 그가 74세 되던 해 유배지에서 맏아들에게 보낸 편지인 '기대아서(寄大兒書)'는 후손들에게 전하는 실천 윤리가 담겨 있어 '충헌공 가훈(忠憲公 家訓)'으로 불리며 대대로 금과옥조(金科玉條)가 되었다. 윤선도(尹善道)는 편지에서 강조한 나눔과 배려를 몸소 실천했다. 유배에서 돌아온 후 어려운 이들을 위해 쌀 백 곡을 내놓는 등 꾸준히 나눔을 실천했다. 이는 명예만 누리고 의무를 다하지 않는 현 세태에 더욱 큰 울림을 준다.

🔳 참고문헌

1. 다모, [윤선도가 큰 아들에게 부친 편지, 기대아서], 네이버 블로그 '귀촌 후 7년', 2016.

2. 윤작가, [내가 걷는 길, 조상 자랑], 네이버 블로그 '윤재열의 사랑방', 2023.

3. 윤춘식, [충헌공 가훈-기대아서], 네이버블로그 '녹우당의백련',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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