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8일(금) 제52회 한국목간학회(회장 권인한) 정기발표회에서 윤선태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부여 쌍북리 590번지 유적 출토 비석의 탁본을 공개하고 백제시대의 비석이라 주장해 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윤 교수는 이 비석을 「백제기해명석비(百濟己亥銘石碑)」로 명명하고 판독문과 해석문을 모두 공개해 같이 자리한 전문가들에게 검증을 받는 시간을 가졌다.

비석의 출토지를 소개하는 윤선태 교수

우선 문제가 된 석비는 부여 쌍북리 590번지 일원에서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 건물지에서 출토된 것으로 최근 (재)호남문화재연구원(원장 신흥남)에 의해 2017~2018년 1차 조사가 이루어졌고 2022~2023년에는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최근에는 발굴 보고서가 출간된 바 있다. 출토 지점은 금성산의 북서쪽 사면에 해당되며 Ⅰ지점의 2호 건물지 배수구 위에 놓여진 기단석에서 발견되었다. 이 2호 건물지의 축조 연대는 통일신라~고려시대로 추정된다.

다만 발굴보고서에서는 이 석비에 대해 과학분석까지 시도하였으나 '月' 한 글자만 판독할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고 석비 관련 수치 등에도 오류가 확인되는 등의 문제가 있어서 2023년 이 비석의 탁본을 얻었던 윤 교수가 직접 나서 판독과 해독을 시도하고, 나아가 역사적 의미 부여까지 했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의 큰 관심을 모았다.

비문 판독 결과를 설명하는 윤선태 교수

윤선태 교수에 따르면, 이 비는 기존 백제 '사택지적비'와 마찬가지로 정사각형의 가로 세로 괘선이 있다는 점과 비문의 초반부에 '백제'의 '백'이 읽힌다는 근거에서 이를 백제 비석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기해년'을 무왕 즉위 40년이 되는 639년으로 보고, 이 비석에서 '달솔(達率)', '자씨존(慈氏尊)', '자씨당(慈氏堂)', '도솔(兜率)' 등을 추독하여 익산 백제 미륵사와 공명하는 백제인의 미륵신앙을 보여주는 유물로 이해된다고 설명했다.

윤선태 교수 소장 쌍북리 출토 비석 탁본


다만 이 비석은 그 마멸이 심해 일반인의 눈으로는 거의 글자가 보이지 않으며, 현장에서 탁본을 본 전문가들도 '기해(己亥)' '팔월십삼일(八月十三日)' '북관(北官)' 등의 몇몇 글자가 읽히는 것에는 동의했지만, 윤 교수의 나머지 판독에 대해서는 유보하는 입장을 보였다.

자리에 함께 한 몇몇 전문가들은 윤 교수의 판독문 대로라면 문장 구조나 구성이 7세기 전반의 백제의 것이라고 보기에는 매우 수준이 떨어진다는 것을 지적했고, 여러 가지 글자체를 집자해서 만든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도 있었다.

윤 교수의 주장 대로 이 비석이 백제의 비석이 맞다면 '사택지적비'를 잇는 대단한 발견이 될 것이며, 역사적 의미도 상당하다고 여겨진다. 다만, 현장에 참석한 전문가 의견으로는 더 후대로 보거나 아예 더 연대를 끌어올려 보아야 하는 입장도 있어서 비석의 연대를 확정짓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보인다. 다만, 현존 금석문이 손꼽히는 고대사 연구에 작은 자료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열과 성을 다한 윤 교수의 치열한 연구 정신에 참석자들은 큰 박수를 보냈다.

비석에서 '백제'의 '백'자를 가리키는 윤선태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