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새곡 속의 소주와 농태기]
조선시대
’구강’ 은 1812년 56세의 나이로 암행어사에 임명되어 함경도 북관을 순찰하여 민정을 기록한다.
이몽룡의 암행어사를 생각하고 페포파립에 개다리상 발로 툭 차고 춘향이 데려가는 ‘출두야~!!’ 외치며 편하게 업무보는 그런 생각하면 안된다.
9월부터 시작된 174일의 기간동안 5595리 , 서울부터 부산을 잇는 경부고속도록의 5배에 에 이르는 거리를 이동한 이 순행에서 그와 역원들은 불도 없이 구십리 산길을 걸어 앞에 지나가는 짐승이 무엇인지 몰라 두려움이 그저 쉬지 않고 이틀을 걷거나 말을 다같이 들쳐메고 물을 건너거나 나이가많아 이가 다빠져 엿도 우물거리며 먹여하는 신체임에도 한겨울에 길엣앉아 귀리밥을 흰 눈에 데워 삼켜가며 공적임무를 수행했다.
백성들의 굶주림과 세금수탈로 고통을 받는 모습은 물론 세금을 걷기에는 환경에 의한 생활고가 극심함도 세세하게 전달했다. 쌀도 팥도 일생태어나 구경 한 번 못해보는 곳에다 징세를 물리다못해 녹용까지 바치란다.
이를 기록하거나 문서작성을 위해 종이 먹 벼루 붓 을 가지고 다니면서 이를 파는 장사치로 분장하거나 민중 속에 들어가기 쉬운 골무 바늘 담배를 가지고 다니며 숙박료를 대신하곤하는데,
그런 그가 함경북도 두만강 근방의 온성을 지나는 중에 소주장수를 만나게 된다.
말을 쉬게하는 사이 갑자기 나타나 싸게 파니 촌사람 솜씨라 생각하다 맛을 보고 관가 술이 분명하여 암행어사임을 틀켰구나 한다. 모르는 척 담뱃대 둘을 주고 마신 술이 어찌나 맛이 좋은지 독에 빚어 숙성된 지도 여러날이 된 듯하고 ‘한 병을 기울이니 감홍로와 다름없다 ’감탄을 한다.
암행어사임이 들킨 것은 입맛이 쓰나 어쩌랴 술 맛은 지극히 좋은 것을.
’ 속 깊구나 이 부사야 너 언제 날 알더냐‘ 반어법으로 마무리할 밖에.
북한에 가서 마실 수는 없지만 충북음성에서 쌀과 청결고추씨 천년초를 사용한 ‘농태기’ 가 있다
북한 서민들의 삶이 녹아있는 가양주로 농번기에 서민들이 즐겨마시던 소주이다. 모든 한식과 잘 어울리며 면류 육류 해산물을 재료로 한 타국적 음식을 먹을 때 입안을 말끔히 정리해준다
하나도가에서 생산하며 도수는 25도
우리술상회에서 구입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