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22일 조전왕조실록을 지켜낸 내장산에서 1천여명 참여한 '제1회 전국 국가유산지킴이 날' 기념식에 참여한 기아국가유산지킴이 기념사진과 미래산업과학고등학교 디자인과 학생들이 만든 웹툰표지 사진(사진촬영 오현, 네이버 검색)

1592년 임진왜란 발발 당시, 외적의 침입으로 인해 충주, 상주, 춘추관에 보관되던『조선왕조실록』사고(史庫)가 불타는 비극 속에서도, 전주사고(全州史庫)에 남아 있던 실록들은 관군도 아니고 관료도 아닌 평범한 백성들의 헌신으로 기적처럼 보존됐다. 정읍의 선비 물재 안의(勿齋 安義, 1529~1596)와 한계 손홍록(寒溪 孫弘祿, 1537~1610), 그리고 내장사(內藏寺) 주지 희묵대사(希黙大師) 등 이들은 실록과 어진을 내장산(內藏山) 깊은 산중 암자로 옮겼다. 그들은 용굴암, 은적암 등에 은밀히 실록을 숨겨 보존했고, 그 과정을 수직상체일기(守直相遞日記. 안의가 임진왜란 당시 전주사고본 태조어진,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등을 보관하던 370일간의 매일의 경험을 기록하여 남긴 일기)로 기록한 것이 바로 『임계기사(壬癸記事)』이다. 이는 임진년(壬辰年, 1592)과 계사년(癸巳年, 1593) 동안 실록과 어진을 지킨 실제 기록으로, 후세에 귀중한 사료로 남아 있던 역사적 사실은 오랜 시간 잊혀져 있었다.

임진왜란 때 충주, 상주, 춘추관의 사고가 소실되고 전주사고에만 남은 조선왕조실록을 안의와 손홍록, 희묵대사 등의 민초들이 지켜내서 1997년에 세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 되었다.

전주사고에 보관되어 있던 조선왕조실록 60여 궤짝을 내장산으로 이안하는 모습 사진(가운데), 안의와 손홍록 선생의 위패를 모신 남천사(위)와 묘(아래) 등의 모습


이 숨겨졌던 기록의 가치는 2000년대 초, 국가유산지킴이(구' 문화재지킴이) 활동을 해온 지역 향토사에 관심이 켰던 시사매거진 전북취재본부 이용찬 문화 국장에 의해 재조명되었다. 그는 안동과 정읍을 오가며 『임계기사(壬癸記事)』를 발견했고, 2011년 이를 논문으로 세상에 알렸다. 이후 정읍 내장산 일대의 암자 터들이 시굴조사를 거쳐 2015년 전라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으며, 『임계기사(壬癸記事)』 역시 2017년 전라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이를 계기로 당시의 실록 수호자였던 안의(安義)와 손홍록(孫弘祿)의 정신은 ‘국가유산지킴이(구' 문화재지킴이)’의 선구적 모델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러한 역사적 의미를 되살리기 위해 2018년, 당시 전국 국가유산지킴이(구' 전국 문화재지킴이)연합회장이었던 조상열 회장은 실록이 내장산으로 옮겨졌던 6월 22일을 ‘국가유산지킴이(구' 문화재지킴이)날’로 지정할 것을 제안했고, 전국적인 공감 속에 2018년 6월 21일 경복궁 수정전 앞에서 공식적으로 선포되었다.

전주사고에서 내장산으로 조선왕조실록을 이안체험 모습과 조형물 사진

2019년 6월 22일 '국가유산지킴이날' 행사에서 조선왕조실록 이안행사에 참여한 기아국가유산지킴이 회원들의 모습


오늘날 우리는 인공지능(AI)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기술은 급속히 진보하고 있고, 사람들은 각박한 현실 속에서 ‘먹고 살기’에 바쁘다. 그런 시대에 “국가유산지킴이날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질문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문화유산은 단순한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정체성이고, 수천 년의 역사 속에서 얻은 소중한 지혜가 담겨 있는 보물 같은 존재이다. 문화유산을 지킨다는 것은 과거의 기억을 현재에 살리고, 미래 세대에게 고스란히 전하겠다는 다짐이다. 또한 문화유산은 콘텐츠 산업, 관광 자원, 교육 등 다양한 방면에서 현실적인 가치를 창출하는 역동적인 존재이다. 더욱이 전 세계가 획일화되는 디지털 시대 속에서, 국가유산은 문화 다양성과 인간의 독창성을 지키는 최후의 방파제가 되어줄 것이다.

2021년 국가유산지킴이날을 기념하여 대동문화재단 회원 및 광주문화유산 회원들(위, 아래 왼쪽)과 함께 정읍 내장산 조선왕조실록 이안 장소인 은적암(아래 가운데), 용굴암(아래 오른쪽) 등을 답사한 모습

2019년 6월 22일 정읍시 내장산에서 제1회 '국가유산지킴이날' 행사에 참여한 기아국가유산지킴이 회원과 가족들의 모습들...


6월 22일 '국가유산지킴이날'은 단지 과거를 기리는 날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미래를 위한 ‘지킴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일깨워주는 날이다. 우리가 어디서 왔고, 무엇을 지켜왔는지를 돌아보며, 각자의 자리에서 문화유산을 보존하는 작은 실천을 이어가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가 실현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킴이 정신'이 아닐까 싶다.

🔳 참고문헌

1. 이용찬, [물재 안의의 가계와 임계기사 연구], 풍류방정읍진산동영모재, 2011.

2. 조상열, [6월22일 '문화재지킴이날' 국가기념일 제정을 위한 워크숍], (사)한국문화재지킴이단체연합회, 2019.

3. 유진섭, [정읍과 조선왕조실록], 정읍시공식 유튜브채널 정읍see, 2021.